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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제주여행일지

제주여행일기

 

이것은 이 식당이 어떻다, 이 숙소가 어떻다 하는 리뷰는 아니고, 초4때 가족여행, 각종 수련회와 수학여행 정도로만 갔었던 제주도를 드디어 으른이 되어 마주하게 된 소감을 적은 여행일기라고 봐주시면 되겠습니다.

 

일단 이 여행은 부모님, 그리고 동생과 함께 했던 여행이었다. 처음 12일은 넷이서 하고, 3일째되는 날은 엄마랑 보내려고 했는데, 마지막 날의 꿈(?)은 산산이 조각나버린...

그야말로 나의 허실부실함이 극치를 이룬 아주 아주 특별한 여행이 되시겠다.

애초부터 내가 주인공이 아닌, 엄마 아빠를 위한 여행이었는데, 이기적인 나는 모든 것이 아직도 내 중심이었다.

예를 들면 나는 완전 쉬겠다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던 거부터가, 그리고 숙소와 비행기만 정해놓고 세부 일정은 없다시피했다. 원체 즉흥적인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제는 좀 달라야 한다는 것을... 엄마 아빠를 대접해드리고 잘 모셔야 한다는 생각은 1도 없었던 것이다.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여행에 꼽사리 낀 주제에...

여행경비도 부모님께서 거의 부담하셨다.

제주도 가로수는 이렇게 귤나무들이 많다... 지나가다가 그냥 따먹음 ㅎㅎ

첫째날 _ 부산에 계신 부모님 먼저 제주 도착 후 렌트가 빌려 공항 근처에서 노시다가 우리 픽업. 그리고 이호테우 해변 잠깐 보고, 길가에 있는 갈치요리집에 들린다. 가게에 들어설 때부터 비릿내가 진동을 했지만, 그때가 1시가 넘어 배가 너무 고팠으므로 그냥 먹기로 하고 주문을 했다. 밥시간인데도 사람 하나 없고.. 그저 평일이어서 그러거니 했는데. 아빠는 은갈치 통구이를 한번도 먹어본 적 없다며, 기분 좋게 첫 식사를 좀 세게 나가기로 했다. 13만원짜리 3-4인용을 시켰다. 식전 죽으로 비릿한 전복내장 냄새가 일품(?)인 전복죽이 나왔다. 한입 먹었을 때 먹을 만 했는데 도저히 끝까지 먹기가 어려웠다. 그 뒤로 새우 구이가 나오고, 해물탕, 성게미역국, 반찬 등등이 나오고, 드디어 주인공 갈치구이가 나왔다. 굵은 소금이 턱턱 뿌려져 약간 짠듯했지만 맛이 나쁘진 않았다. 막 맛있지도 않았다.

 

반찬과 메인의 조화가 너무 부족했던... 갈치구이집

 

첫 식사를 약간 아쉽게 끝내고 이제 요즘 젊은이들 많이 가는 애월로 향했다. 거기에 젤 유명한 봄날이란 카페를 갔는데, 해안절벽에 바로 있어서 전망이 끝내줬고, 카페 인테리어도 근사했다. 음료도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바람이 어찌나 불던지 진짜 몸이 휘청휘청했다. 엄마 아빠는 아무리 좋은 장소라도 오랫동안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강한 바람을 뚫고 해안가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제주를 상징하는 현무암이며, 유채꽃, 비취색 바닷물까지 걷는 내내 연신 사진을 찍어대며 앞으로 시작될 여행을 설레어했다.

 

애월 둘레길
애월 봄날 카페

 

그렇게 다음으로 간 곳은 아아, 어디였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 그래 ! 오름.

새별오름이었다. 그냥 떡 하니 언덕이 하나 있었는데, 다들 실망을 했던 거 같다... 옆에 말도 있고, 멀리서 봤을 때 살짝 신비로운 것이.. 한번 정도 와줄만 했다. , 패쓰~

 

새별오름

 

그때부터 급 피곤해진 우리는 황급히 숙소로 돌아갔다.

제주의 서북쪽. 한림읍에 위치한 리조트. 아빠 회사를 통하면 할인이 되기 때문에, 어디 여행을 가게 되면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도착. ? 근데 폐가 같이 생겼다. 밖에서 창문을 올려다보는데 커텐도 너덜너덜하고 뭔가 이상하다. 알고보니, 그 건물은 전에 쓰던 거였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바로 바다가 보인다. 전망이 끝내준다.

 

리조트 바로 앞에 있던 농구대

 

짐을 풀고, 엄마랑 동생은 너무 피곤했는지 한숨 자고, 소화가 안된다는 아빠를 따라 숙소 주변을 이리 저리 둘러보았다. 찻길이 하나 나 있고, 뭐가 없어도 너무 없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펍을 지나, 아주 오래되 보이는 돌문(?)이 있었다. 양방으로 무시무시하게 생긴 도깨비가 그려져있고. 안쪽에 비석이 있었는데, 조상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그런 곳인 것 같았다. 과거 조상들이 쓰던 오래된 제사터와 신식으로 보이는 제사 장소가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있었다. 마을 한 어귀에 이런 곳이 있다니, 제주에는 아직 샤머니즘이 곳곳에 남아있는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마을을 쭉 돌고 와, 지하에 있는 편의점에서 활명수와 몇가지 주전부리를 사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깨어있었고 동생은 과자 봉지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일어났다. 이제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뭘 먹어야할지, 날더러 자꾸 묻기만 하는 가족들. 일단 검색해보기로 한다. 고기국수로 메뉴가 정해지고, 맛집을 찾아 인터넷 서핑을 시작한다. 파도타기 몇 번 안하구서, 스르륵 서핑 보드에서 내려오는 나. 현지인들이 많이 간다는 자그마한 가게를 찾았다. 이름은 듬돌이란 곳이었는데 나중에 현지인 운전사분께 들어보니, 음식점 이름으론 좀 특이하다고. 돌이 많은 제주에서 돌을 드는 그런 놀이가 있는데, ‘듬돌은 그 놀이의 이름이라고 한다.

고기 국수

고기국수는 너무너무너무 기대를 한 탓에, 첫 젓가락이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육수는 깊은 맛있었는데 간이 굉장히 싱거웠다. 혹시나 실패할까 염려한 엄마만이 국밥을 시켰는데, 국밥 맛은 기가 막혔다. 알고보니 이집은 국밥이 맛있는 집이였다 한다. 근데 지나고나니 그 맛이 생각이 난다. 간만 좀 싱거웠을 뿐 깊은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살짝 쫀쫀한 맛이 있는 국수발도 좋았다.

그냥 숙소에 가기엔 아쉬웠으므로 주변을 찾아보다가 선인장군락이란 곳을 발견했다. 제주도에서 파는 백년초. 그게 바로 선인장에서 나는 열매인데, 이 마을에 가보니 마을 지천에 선인장이 널렸다. 더 신기한건 그곳이 누가 심어서 난 게 아닌 자생지였단 것이다. 어두워서 플래시를 비쳐가며 우리는 신기해하며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신나게~ 잠을 잤다(?)

 

둘째날 엄마 아빠의 추억 속으로.

아침에 스프와 편의점 죽을 간단히 먹고, 저지리 예술인 마을이란 곳으로 갔다. 말그대로 예술인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었고, 중간에 현대미술관이 있는데, 미술관 들어가는 길이 굉장히 느낌 있었다. 미세먼지가 심해서 뿌옇게 보임으로 좀 더 신비로운 느낌이 가중되었다. (초긍정의 힘)

저지리 예술인 마을

김흥수 작가의 독특관 작품세계를 만나고, 차 한잔을 하러 카페에 갔다.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가는데 정원에 전시된 동물 몸에 꽃 얼굴 조각들을 보며, 동생이 징그럽다며 진절머리를 쳤다. 엄마도 동의했고, 아빠는 늘 엄마편이므로 결국 아빠의 평도 좋지 못했다. 그렇게 무시무시한 길을 빠져나와 흑돼지를 먹으러 갔다.

돼지고기는 기본은 될테니까, 마구 설렜다. 게다가 제주에 사시는 엄마 친구분이 소개해주어서, 은근 기대가 되었다. 내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별점은 3... ? 난 어차피 인터넷 평은 잘 안보니까. 그냥 이 설레는 분위기 깨고 싶지 않아 살그머니 넘어갔다.

가게엔 우리 뿐이었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 문을 죄 열어놨는데 어째 좀 전에 그 일을 시작한 걸까, 탄내가 심하게 났다. 알고보니 이 집은 연탄구이집이었다. 연탄구이라니 정말 오랜만이다. 미세먼지에 연탄내까지 섞여 머리가 아팠지만 배가 너무 고팠다.

고기가 상당히 두툼하다. 아저씨가 나름대로 방법을 가지고 스테이크 자르듯이 네모 네모로 잘라주신다. 나는 그 사이 옥수수맛이 나는 샐러드를 우적우적 먹고 있었다. 그렇게 2-30분이 지났을까... 다되었다며 먹어보라는데 너무 두꺼워서 한번 확인을 해보려고 자르려는데, 그렇게 작게 고기를 자르면 어쩌냐며 핀잔을 준다. 우짜노. 우리는 그 아저씨 배려하는 차원에서 뭐라 말도 못하고 그냥 그 고기를 조금씩 먹었다. 참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래도 나는 맛있게 먹긴 했다.

제주도 방주교회

아빠가 원하던 서귀포로 넘어가기전.. 엄마가 지인에게서 들었던 '방주교회'란 곳에 들리게 되었다. 엄마는 거기서 여러모로 감동을 받았다. 보통 절이나 구경을 가지 교회 건축이 멋있어서 오는 경우는 없다며, 진짜 건물이 독특하긴 했다. 옆에 있던 카페도 느낌있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떠나는 곳은 엄마 아빠의 추억 속으로 가는 시간이었다. 중문관광단지.. 서귀포로 점점 내려갔다. 요즘에는 서귀포 관광이 뜸하다는데, 아무래도 제주도에 많이 와본 사람이 제일 처음 가는 곳이 바로 이쪽이고.. 주로 제주도만의 독특한 자연을 느끼기 위해 오는 곳이지만 옛느낌 그대로 남아있어, 신선함을 즐기는 젊은이들은 주로 제주시 쪽을 선호하는 듯 하다.

우리는 90년대 초에 지어진 듯한 중문관광단지 내의 초콜릿 랜드를 갔다. 아빠가 초콜릿 박물관을 가고 싶어했는데, 두 군데가 있어서 이쪽으로 오게 되었다. 입구에 미스코리아 같은 분들이 초콜릿 쇼핑백을 들고 찍은 단체 사진이 있었다. 3천원을 내고 들어가 보았다. 온갖 종류의 초콜릿들이 포장지에 들어있었고, 또 유리 진열대에 들어있었다. 초콜릿으로 만든 그림, 다양한 모양의 초콜릿을 지나, 3천원 입장권에 7천원을 더해 초콜릿을 다섯 개인가를 샀다. 재미없었다.

그리고 바위 모양이 너무 신기한 주상절리를 지나, 엄마 아빠가 신혼여행 때 다녀갔다는 정방폭포에 갔다. 이곳은 관광버스와 고등학생들의 점령지였다. 수학여행때 생각이 좀 났다. 아빠는 신혼여행 생각이 많이 났는지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마음이 들떠보였다. 엄마도 인정은 안하겠지만 아빠에게 동요되어 신나보였다. 우리는 바위를 식탁 삼아, 해녀 할매들이 따오신 해산물 한접시를 먹었다. 옆 식탁의 아저씨 아주머니 관광객들도 신이 났는지 노래를 불렀다.

이날은 아빠와 동생이 돌아가는 날.

서귀포 끝자락에서 다시 극과 극인 북쪽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시간이 좀 남아, 공항 근처 동문 시장에 들렀다. 시장에서 군것질을 하고, 렌터카를 반납하러 가는데 동생의 비행기 시작이 40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운전자 등록을 해놓은 건 동생과 아빠였기에 차를 넘겨받을 수도 없는 상황. 그렇게 결국 비행기를 놓치고 만다. 이후 비행기에 혹시 자리가 나올까 좀 더 대기해봤지만 결국... 하루더 남기로 한다. 부랴부랴 내가 다음날 비행기를 끊고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한다. 이제 내가 운전을 하게 되었는데 차 썬팅이 너무 심해서 밖이 잘 안보이고, 게다가 후방카메라도 없다. 이 밤에 40분을 달려야하는데 정말 다리가 뻣뻣하게 긴장이 되었다.

동쪽 성산일출봉에 가까운 숙소에 잘 도착했다. 엄마랑 동생은 숙소에 대해 꽤나 흡족해했다. 내일 1시에 동생을 데려다주고 엄마랑 둘이서 재밌게 놀아야지. 그 밤도 그렇게 잘 보냈다.

 

셋째날 동생을 다시 공항 쪽에 데려다줘야해서 숙소 근처에서 놀아보겠단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지만 그대로 갈 때는 많으니까 생각하며, 동생을 데려다주고 평화박물관이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동생이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나는 운전 중이라 엄마가 전화를 걸어보니, 비행기가 오늘 출발이 아니라 내일 1시 출발 이었던 것.

어제 너무 당황해서 하루 늦은 비행기를 끊었던 것이다. 가뜩이나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던 동생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공항으로 다시 동생을 픽업하고 평화박물관으로 향하려다 너무 배가 고파, 이호테우 해변에 들려 밥을 먹기로 한다. 갈치 조림, 토막 갈치 구이, 회 무침, 전복물회 등 꽤나 푸짐했는데 5만 얼마 정도가 나왔다. 첫날 먹은 13만원짜리 통갈치구이가 생각이 났다. 전라도분이 요리사여서 그런지 맛도 좋았다.

그리고 간 곳 평화 박물관. 가는 길이 너무 좋았다. 가다가 가로수에 있는 낑깡도 따먹고, 구불구불 길가에 있는 꽃들이며 나무들 구경에 금새 도착하고.. 아무도 없는 평화 박물관에 들어갔다.

자그마한 할아버지 한분이 우리를 상영관으로 안내해주셨다. 서툰 말솜씨로 간단한 설명 후 영상을 보는데... 이곳이 막연히 4.3사건에 관련된 곳인가 했었는데 알고보니, 일본군들이 오름 밑에 지하기지로 이용하기 위해 우리 선조들을 강제노역 시켜 만든 땅굴이 있는 곳이었다. 이 박물관은 이때 강제징용 되었던 아버지를 둔 분이 자기 전 재산을 털어 만드셨는데, 땅굴에서 당시 물건들을 직접 채집하는 등 엄청난 정성이 들어가있다.

이런 개인 박물관은 처음이라, 그것도 자신을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쏟은 정성이 감동이 된다.

다음에 갔던 박물관 역시 뭔가 굉장히 매니아적이었다. 분재정원. 나무를 좀 더 가까이 하기위해 만들었다는 분재... 분재 하나 하나 마다 글귀가 붙고, 분재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적어놓은 팻말들이 많이 보인다. 생각하는 정원이란 말처럼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데... 뭔가 하나에 미쳐서 이렇게 몰입할 수 있다는 것도 참 기쁨이겠구나 하는 것이 제일 먼저 였다.

제주도는 몰입의 고장이다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사는 그 땅을 위해 아파하고, 고민하고, 행동하는 제주가 참 매력적이다. 제주도의 매니아를 만날 수 있었던 마지막 날.... 나도 내가 가지고 있는 즐거움을 좀 더 집중해 나아가도록 해야겠다... 한가지 일에만 몰두하면 편협해질 것 같은데,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모쪼록 여행이란 것은 내 눈앞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해주는... 소중한 도구가 된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서, 이런 여행지에서 조차도 늘 책임감에 쉴 수 없었던 아빠. 이 여행지에서 운전대를 놓았다는 것은 어쩌면 상징적인 의미이다. 아빠도 장성한 자녀들에게 의지하고, 충분히 쉼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도 이번 기회로 너무 가족에게만 의지하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려 했던 나의 철없음을 발견했던 거 같다. 각자 살다가 또 다시 이렇게 한번씩 뭉칠 때 어떻게 해야할지.. 조금씩 나아지겠지. 배려하려는 마음이.